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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年 한국 최초의 마라톤화

등록자 철인선수 등록일 2008-01-06 22:44:08 조회수 1,667
 
1946年 한국 최초의 마라톤화 ‘압-슈즈’

 
한국 마라톤 전성기와 함께한  ‘대륙사’의 자취

 
1940~1950년대는 손기정 선생의 올림픽
제패(1936) 이후 찾아온 한국 마라톤의 전
성기였다. 한국의 마라톤 영웅들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한국의 힘을 세계 만
방에 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선수
들이 사용했던 신발과 옷은 조악하기 그
지없는 것들이었고, 이런 사정은 다른 나
라의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스포츠 브랜드라는 개념조차 희미하
던 그 시절, 우리나라에는 선수 맞춤형 마
라톤화를 만들던 장인 황이성 선생의 ‘대
륙체육사’가 있었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져버린 ‘대륙사’의 흔적을 「달
리는 세상」이 정리해 보았다.
 
한국 최초의 수제 마라톤화 제작자 황이
성 선생은 원래 낙원동(얼마 후 종로3가
파고다공원 건너편으로 옮김)에서 양화점
을 하는 구두 제작자였다. 젊은 시절 씨름
을 하다가 다리를 크게 다쳐 불편한 몸이 되었지만 누구보다도 스포츠를 좋아하는
애호가이기도 했다. 그의 가게에는 심심찮게 운동선수들이 찾아와 운동화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곤 했다. 워낙 물자가 귀하고, 스포츠 용품도 부족하던 때라
제대로 운동을 하려면 신발을 맞추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황이성 선생은 자신은 비록 몸이 불편하더라도 열심히 뛰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 기
여하고 싶어 이런 주문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니 점점 ‘운동화 전문가’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여러 가지 종목의 신발을 만들었지만, 점차
육상화만을 전문적으로 만들게 되었다(이 때가 대략 1946년으로 추정된다).
 
‘아식스’가 부러워한 ‘대륙사’의 노하우

그가 만든 육상화로는 트랙경기용 스파이크와 압-슈즈(up-shoes)라는 이름의 로
드레이스용 러닝화가 있었다. 당시에 육상용 스파이크를 만든다는 것은 오랜 경험
과 노하우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가죽으로 외피를 만들고 바닥에 철판을
덧대 그 위에 가느다란 못을 박아 스파이크를 만들었다. 비록 지금의 신발들에 비하
면 무겁고 내구성도 좋지 않았지만 당시로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스파
이크 못을 주물로 떠내고 열처리하는 기술은 상당한 것이었다.

신발의 디자인이며 각 부위의 가공기술을 모두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했던 황이성
선생은 처음에는 외국에서 만든 제품들을 참조하기도 했지만 점차 독보적인 기술을
만들어갔다. 그 명성이 알려지자 일본의 스포츠화 전문업체 ‘오니츠카 타이거(아식
스의 전신, 1958년부터 마라톤화를 만들었음)’로부터 기술제휴 제의도 들어왔다. 그
러나 황이성 선생은 “나만의 길을 걷겠노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의 업체와 손을 잡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많은 영웅들을 키워낸 마라톤화 ‘압-슈즈’

대륙사가 로드레이스용으로 만든 ‘압-슈즈’는 가히 대륙사의 대표상품이라 할 수 있
었다. 이 신발은 수많은 육상선수들에게 애용되며 ‘마라톤화=대륙사’ 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압-슈즈’가 나오기 이전까지 장거리(혹은 마라톤) 육상선수들은 일반
작업화나 조악한 운동화, 스스로 개조한 신발들을 신고 운동을 했다. 국민의 영웅
손기정 선생만 해도 올림픽 무대에서 일본의 ‘마라톤 다비’를 신고 달렸었다. ‘다
비’란 일본의 노동자들이 육체노동을 할 때 신었던 작업화로, 엄지발가락과 다른 발
가락이 분리되어 들어가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다비를 스포츠화 버전으로 변형
시킨 것이 ‘마라톤 다비’였다.

 
그러나 대륙사가 생긴 이후로는 선수들이 모두 압-슈즈를 신었다. 비록 폐타이어와
가죽을 이용해 만들어 딱딱하고 무거웠지만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손기
정, 함기용, 최윤칠, 서윤복, 최충식, 이창훈 등 마라톤 영웅으로 기억되는 쟁쟁한
선수들이 다 이 신발의 고객들이었다.

압-슈즈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모두 수제 맞춤형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단순
히 여러 개의 신골을 사용해 다양한 모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수의 발 상태와
특징, 주법 등을 고려해 그 선수에게 최적화된 신발을 만들었다.

당시 선수들에게 대륙사 신발 압-슈즈를 신는다는 것은 시쳇말로 ‘잘 나간다’는 뜻
이기도 했다.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 출전할 정도의 수
준이 아니면 신발을 맞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시합을 하러 서울에 올
때마다 종로에 들러 신발을 맞추고 갔다. 그렇게 맞춘 마라톤화 중에서 특히 발에
잘 맞고 편한 것은 평소에 신지 않고 잘 간수해 두었다가 큰 대회가 있을 때만 신곤
했다.
 
<한국 최초의 마라톤화 ‘압-슈즈(up-shoes)’>  

1세대 제품 : 일본신발 다비에서 뜯어낸 창(경기용)이나 폐타이어를 오려 만든 창
(트레이닝용)으로 밑창을 대고, 손칼로 폼을 파 창의 무늬를 만듦. 겉창은 가죽으로 만들고 양 옆면의 변형을 막기 위해 실로 누볐다.

2세대 제품 : 직접 제작한 틀에 생고무를 부어 만든 창을 대고, 가죽이나 범포지
(두꺼운 면 소재)로 겉창을 만듦. 양 옆쪽에는 변형을 막기 위한 세 줄의 가죽이 덧
대어져 있었고, 범포지를 이용한 경우에는 앞쪽과 뒤쪽에도 가죽을 덧대었음.

3세대 제품 : 생고무와 스폰지 소재를 합성하여 밑창을 만들고, 겉창은 망사원단
등을 사용하여 통기성을 높였다. 양 옆쪽에는 현재의 아식스 로고와 유사한 가죽
문양을 부착하여 전체적인 내구성과 신발의 변형을 막았다.
 
역사속으로 사라진 ‘대륙사’

대륙사의 마라톤 신발이 전성기를 누린 것은 대략 1960년대 까지였다. 1960년대에
들면서 몇몇 선수들이 일본 대회에 참가했다가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을 사오기도
했고, 서양에서 한창 쏟아져 나오던 스포츠용품이 드물게 유입되기도 했다. 특히
1977년 오니츠카의 전통을 물려받은 ‘아식스’가 설립되고 1982년 국내에 들어오자
대륙사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한때 기술제휴를 제의받기도 했던 대륙사와 아식
스의 위치가 어느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버린 것이었다.

이후 우리나라에도 화승(프로월드컵), 코오롱(엑티브), 국제상사(프로스펙스) 등
양산체제를 갖춘 스포츠화 생산업체가 등장했지만, 축적된 노하우와 전통을 바탕
으로 한 아식스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결국 한국 마라톤의 전성기와 함께했던 대륙사는 그 힘을 점점 잃어갔고, 1998년
황이성 선생이 타계하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현재는 대륙사가 마지막으로
위치했던 서울 동대문운동장의 한 상가(현재 스포츠의류 매장이 임대하고 있음)의
간판에 작은 글씨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못내 아쉬운 것은, 지난날 대륙사가 걸어온 행적을 더 이상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다. 제작자 본인인 황이성 선생이 이미 별세한데다, 그의 자손들도 굳이 과거의 행
적을 보존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지면에도 변변한 사진 한 장 싣지 못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그러나 전 국토가 폐허와 다름없었던 시절, 제대로 된 마라톤화 하나를 만들어보겠
다고 덤벼들었던 황이성 선생의 행적은 여러 마라톤 영웅들의 성취 못지않게 한국
마라톤의 큰 자랑으로 남을 것이다.
출처: 달리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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