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끝으로 튕겨 내는 몸짓의 향기 같은 것으로 신 끼, 소리 끼, 춤 끼, 글 끼, 광 끼 등이 있는 것 같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내가 아는 그녀는 나이답지 않게 긴 머리를 뒤로 단정이 묵어 늘어뜨리고 치마가 긴 원피스 차림의 가녀린 몸매로 매사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공주 타입의 오십대 아줌마이다. 간혹  챙이 큰 모자를 우아하게 쓰고 외출할 때면 뒷모습이 처녀 같아 한 번 더 보고 싶은 순수 매력도 지녔다. 또, 웃을 때도 꼭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 까지 감는 버릇도 있다.

 그런 겉모습만 보아온 난 조심스러워 도무지 농썩인 야담은 입 밖으로 내지 못했고, 중년의 우아함을 통째로 지닌 것 같은, 수수한 나와는 조금은  다르다는 것이 그녀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비가 추적거리던 오후 시간있음 운동이나 하자는 그 녀의  전화가 왔다. 춥고 귀찮고 해서 나가기 싫었지만,

연습장에 가니 그 녀는 실내인데도 여전히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느직하게 스윙을 하고 있었다. 몸풀기가 끝날 즈음 느닷없이

"비도 오는데 운동은 무슨 그냥 저녁이나 먹으려 가요"

"그래요 이 깟 운동이 뭐라고 갑시다" 우린 우산 하나를 받치고 근처 식당으로 갔다. 

비는 쓸쓸히 오는데, 찾는이 한사람 없네 농썩인 푸념에 실없이 웃으면서  반주 삼아 한 잔 하자는 그녀 말에 ‘그래요 비 오는날은 술 먹기 좋잖아요" 나 역시 웃으면서 조금 이른 시간이라 술 주문하는 민망함을 덮여주려고 거들고 나섰다.
‘여기요 소주 한 병’ 소프라노로 주문하는 그녀의 자연스러움.
어머 순간 난 짧은 숨을 들여 마셨다. 헉 하면서, 맥주도 아닌 소주를....
‘주법상 첫 잔은 원 삿인 것 아시죠?’ 
"그럼,그럼요 알구 말구요" 과용을 부리면서 화답해줬다.
짠 부딪치는 소주잔 속에 찰랑이는 무채색 기분. 그녀의 꼴까닥 넘기는 소리. 유리창의 시꺼먼 얼굴을 씻기고 있는 겨울비 삼박자가 어우려져 제법 분위기가 잡혔다.  넘어가는 순간 식도가 찌릿하니 저절로 카 소리가 나올뻔 했다.

 ‘술안주는 밥이 최고 예요. 안주 좋으니 많이 드세요’ 권주가 마냥 이소리 저소리 읋어대는 그녀.  솔직하게 보였고 상대방을 편하게 해 주는 센스도 지녔다. 정말로 밥을 안주삼아 먹으니 취하지도 않고 그저 그만 이였다.

그렇게 한병을 꼴가닥 비우고 기분이 좋아진 그녀

‘이차 입가심으로 맥줏집 어때요?’

‘예? 배부른데 더 먹겠어요?’

‘아이 참 밥배와 술배 다르다는 것 몰라요?’

막무가내로 내 손을 이끌고 노란 우산속을 헤집고 들어선 그녀  순간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그녀에 대한 메모리칩은 급성 바이러스에 먹힌 듯 까맣게 지워져버렸다.

더 이상 원상복구는 어려울것 같고,

생맥주 두 잔에 노가리 한 접시 시켜놓고 흥얼흥얼 콧노래 까지 부르며 엉덩이를 들썩들썩 거리는 그녀.

연신 튀밥을 입에 넣으면서 목 젓이 보이도록 웃어댔다.

소소한 바람에도 옷깃을 세우는 자운영 같이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그녀는 무늬만 새침데기 아줌마 공주였던 것이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분위기끼"를 지닌 꽤 괜찮은 여자였다.

~그냥스쳐가기 작~